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고양이 / 임경순 고양이 / 임경순 누구나 닥칠 일인걸 단지 내 차례가 되었을 뿐 밤의 냄새를 머금고 무릎에 앉는다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슬픔을 밤새 봉합하느라 기운을 다 써 버린 새벽 꼬리만 천천히 움직인다 암이 생각까지 파고든 그녀 떠오르는 것이 많을수록 검불데기로 마른 억새꽃으로 흔들린다 가릉가릉 다리를 감으며 맴돈다 유심히 다음에 또 보자고 지하도로 내려가는 등 뒤로 태연을 가장한 시선들이 촘촘히 박힌다 현관문 들어서자마자 무너질 목을 꽂꽂히 세우지만 정신을 지배할 시점을 찾느라 내려야할 전철역을 지나친다 지독한 시간이 지난다 신음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무심히 털을 고르는 눈빛 섬세한 위로를 받는다 더보기
새참 카페 그리고 명품 된장 올 초봄에 여동생 소개로 알게된 된장을 담아서 볕 좋은 곳에다 숙성시켜 주는 마을 공동 사업체를 알게 되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각자의 노하우로 집약된 된장과 간장 만들던 솜씨를 발휘하는 것이라 더 기대가 컸다.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된장 항아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는데 주문해 놓고 11월부터 먹을만큼 덜어가도 된다는 소식에 한걸음으로 달려가 본다. 간장 장독대가 그 위용을 뽐내고 하루종일 햇볕을 쬐기 좋은 너른 장소라 엄마의 손맛같은 정감이 드는 곳이다. 각자 이름표를 달고 있는 투명유리 뚜껑을 열어보니 구수한 향내에 군침이 고인다. 혼자 먹기 아까워 언니랑 나눠먹을 요량으로 듬뿍 푸다가 살짝 맛을 본다. 와우!! 마을 분들이 직접 재배한 콩이고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든 된장이어서 그런지 밥에 그냥 얹고 .. 더보기
훔쳐보는 일기 / 이영란시인 11. 10(목) 시계가 날 때리기 시작하면? 시인의 예쁜 목소리와 얼굴을 닮은 시집을 받았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집을 펼쳤다. 어제 좋은 사람들과 갔던 바닷가 카페가 솔솔 떠올랐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가져온 나는 한동안 좋은 마음으로 가을을 보낼 것이다. 바다처럼 파란 시집 겉표지가 그녀처럼 신선했다. 시를 읽는 내내 나는 언제 이런 시를 쓸까,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건 나에게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 같다. 시를 읽는다는 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오가며 시인의 마음을 혼자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 거기 살짝 앉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50대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나에게 다가온 시는 ‘오십과 육십 사이’였다. 스무 살 즈음엔 섬.. 더보기
정서진 노을 오십과 육십 사이 / 임경순 정서진 노을이 보여주는 세상 건너는 법은 그때그때 다르다 스무 살 즈음엔 섬에서 섬 사이 조각배를 젓는 중이고 서른이 넘으면 여울 깊은 강물 헤엄치는 일이며 마흔에는 산꼭대기 출렁다리를 건너는 것이란다 오십에서 육십은 너와 나 사이에 놓인 섬 강물 출렁다리를 수없이 오가는 중이라며 불콰해진 구름이 오늘따라 석양주를 권하고 있다 더보기
대천해변 그리고 스카이바이크 한국NGO신문 신춘문예운영위원 회원 MT를 태안반도 죽도로 정하고 봉고차를 대여하여 서해로 출발. 부천에서 죽도까지 세 시간을 달려 갔는데 죽도 해안길이 문을 닫았다는 뜨악. 금,토,일만 개방한다는 어이없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모 아니면 도인 거지 하면서 미리 맛집을 답사로 다녀오신 회원 덕분으로 에서 바다에 모든 요리를 맛보는 행복과 마추친다. 신선한 회와 가리비찜, 오징어, 해물칼국수 마지막으로 매운탕의 진수까지 섭렵하고는 둥기둥기 부른 배를 안고 카페로 향한다. 바로 보이는 보물섬 카페에 들어서니 삼면 바다가 보이는 명품 풍경에 탄성을 지를 수 밖에..ㅎㅎ 탁트인 바다 한가운에 앉아있는 호사를 누리며 퀄리티 만점의 차를 마신다. 활시동인으로도 함께하는 회원들이라 두 번째 내 개인 시집을 선물로 .. 더보기
두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ㅡ바보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번도 없다. 두번의 똑 같은밤도없고 두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이제.누군가 내곁에서 내이름을 큰소리로. 불렀으면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때 난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습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 더보기
보문사 2022.11.07 가을 정취가 가득 담겨 있을 보문사 일주문을 들어선다 나무의 원초적인 모습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점. 모두 떨구고 나서의 빈 몸뚱아리로 꽁꽁 겨울나기를 하는 그 처절한 기다림을 위한 단풍은 그렇게 물들고 있다. 낙가산 아래 자리 잡은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 도량이다. 석모도 낙가산 증턱 눈썹바위 아래의 마애 관세음보살로 서해바다를 한 눈에 바라보고 있다. 700년이나 된 향나무의 자태는 캉캉춤을 신나게 추는 무희같다. 늘 어디서나 티가 난다고 해서 느티나무라 했다는데 보문사의 역사를 쓰고 있을 듯한 모습니다. 마지막 가을이 모여있는 보문사에 서리를 맞고도 피어있는 메리골드꽃이 향기를 뿜뿜 날리고 있고 은행잎이 팔랑이며 바람을.. 더보기
강화 명소 - 석모도 상주산 마니산으로 방향을 잡고 친구 세 명은 강화로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상주산 다녀온 지인이 강추하는 바람에 상주에 있는 산이름이 강화에 어찌 그 이름을 달고 있느냔 실소를 터트리며 흔쾌히 합의하였다. 중턱쯤에서 보여지는 등산 안내도를 따라 정상을 향한 심호흡을 하며 등산화 끈을 고쳐 맨다. 그리 높지 않을 듯한 가벼운 산행을 기대한다. 친절한 안내도가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가을은 오솔길을 만들며 갈색빛 오르막 언덕에 무수한 낙엽을 깔아 놓는다. 비교적 잘 관리된 매트랑 보조밧줄은 설치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월요일이라서 인지 고즈녁하니 산길을 걷는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하다. 서로 오랜만에 만나 대화가 고픈 실타래를 풀어내며 오르고 또 오른다. 심심치않게 암벽이 나타나 발바닥에 안정..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