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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게 나답게

훔쳐보는 일기 / 이영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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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진 노을

11. 10() 시계가 날 때리기 시작하면?

 

시인의 예쁜 목소리와 얼굴을 닮은 시집을 받았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집을 펼쳤다. 어제 좋은 사람들과 갔던 바닷가 카페가 솔솔 떠올랐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가져온 나는 한동안 좋은 마음으로 가을을 보낼 것이다.

바다처럼 파란 시집 겉표지가 그녀처럼 신선했다. 시를 읽는 내내 나는 언제 이런 시를 쓸까,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건 나에게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 같다.

시를 읽는다는 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오가며 시인의 마음을 혼자 상상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 거기 살짝 앉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50대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나에게 다가온 시는 오십과 육십 사이였다.

 

스무 살 즈음엔

섬에서 섬 사이 조각배를 젓는 중이고

 

서른이 넘으면

여름 깊은 강물 헤엄치는 일이며

 

마흔에는

산꼭대기 출렁다리를 건너는 것이란다

 

오십에서 육십은

너와 나 사이에 놓인

강물

출렁다리를 오가는 중이라며

 

스무 살의 나는 누구였을까, 조각배를 젓다가 어디쯤에서 뒤를 돌아보았을까

서른의 나는 얼마나 깊은 강물을 헤엄치며 허우적거렸을까

출렁다리를 무서워하는 나의 사십은 나에게서 잘 떠나간 걸까

나를 토닥이며 잘 견디었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 보는 오십 여기,

앞으로 펼쳐질 육십은 나와 또 다른 나 사이로 참 깊은 설렘이 찾아오겠지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시곗바늘이 슬며시 내 손을 잡는다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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