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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지문 / 임경순 섬의 지문 / 임경순 김영갑 사진속 중산간 오름들은 태풍주의보로 더 크게 숨을 몰아 쉰다 소리지르고 싶었던 순간들 삼달초등학교에 머물러 두모악 풍경을 붙들고 있다 저승 돈 벌어다가 이승 자식을 먹여 살리는 숨비소리 어차피 바다에서 죽을 사람은 바다에서 죽는다고 테왁을 칠성판처럼 등에 진다 여린 감나무잎 사이 묵은 감꼭지로 달려있고 싶던 마라도 파도 한숨이 들어있는 자장면을 검게 비빈다 한그릇 섬이 비워진다 암미역 숫미역은 파도의 갈비뼈 4월이면 찾아오는 통증으로 몸서릴 친다 수얘기*들 끼룩끼룩 섬의 지문을 지우며 지나간다 *남방큰돌고래 더보기
노자의 시창작 강의 / 이진우 노자의 시창작 강의 / 이진우 아름답다 말하는 시는 추하고 한목소리로 좋다는 시는 나쁘다 한눈에 읽히는 시는 믿을 수 없고 믿으라는 시는 두 번 읽히지 않는다 착하다고 시를 잘 쓰는 것이 아니고 시를 잘 쓴다고 착하지 않다 지혜롭다고 시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고 시를 많이 안다고 지혜롭지 않다 시를 아는 이는 시를 말하지 않고 시를 말하는 이는 시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시를 쓸 때는 작은 생선 굽듯 조심하라 힘주고 싶을수록 낮추거나 감추고 뽐내고 싶을수록 뒤로 물러나며 작고 하찮은 사물을 크게 보고 적고 힘없는 사람을 높이 여기며 어려운 표현은 쉬운 단어에서 찾고 복잡한 상황을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하며 모두가 욕심내지 않는 것을 욕심내고 모두가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워서 사람들이 잊고 사는 진실을 드러내라.. 더보기
계양산 이야기 숲 공부는 언제나 설레고 기대가 크다. 신비한 숲이 하나씩 그 비밀을 밝혀주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자연물로 머물기에 힐링 그 자체며 착해지려는 낯선 나를 만나게 된다. 속물을 조금씩 지워나가는 계수나무 숲에서 오래 머물러 본다. 더보기
숲을 해설하다 발 빠르게 국립 수목원에 숲 해설 교육 실습을 신청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JOOM 수업과 현장 실습 강의를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대에 들뜬 칠월 말경 힐링할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이다. 국립수목원은 서너 번 와 본 적은 있었으나 해설가를 신청한 적이 없고 휘이휘이 수박 겉할듯 그렇게 둘러본 것이었으니 새로운 접근으로 인해 기대 반 긴장 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굴참나무가 서 있는 입구 숲해설가의 보금자리에서 숲해설가 실습의 첫 테이프을 끊어 본다. 산림 박물관에는 나비의 표본과 부피가 엄청나게 큰 나무 나이테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그 규모와 세세한 기록들이 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바닥에 설치되어서 마치 김정호가 되어 산과 계곡을 넘나드는 기분이 들었다. 산림 박물관에 담긴.. 더보기
나무 학교 / 문정희 나무 학교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 해마다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 늘푸른 나무 사이로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서 배우기로 했다. ​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 지기로 했다. ​ 더보기
변신 / F. 카프카 변신 1 어느 날 아침, 잠자던 그레고르는 뒤숭숭한 꿈자리에서 개어나자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질로 된 갑옷처럼 딱딱한 등을 밑으로 하고 위를 쳐다보며 누워 있던 그가 머리를 약간 쳐들자, 볼록하게 부풀어오른 자신의 갈색의 배가 보였다. 배 위에는 몇 가닥의 주름이 져 있고, 주름 부분은 움푹 패여 있었다. 그 배의 불룩한 부분에는 이불의 끝다락이 가까스로 걸려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른 부분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는 수많은 다리가 그이 눈앞에서 불안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진정 꿈은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작가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이 사는 평범한 방.. 더보기
제2시집 [시계가 날 때리기 시작해요] 임경순/시해설 ■해설 기호놀이로 포착하는 유쾌한 세상 재미난 인생 양 병호 #. 마음의 놀이터, 시, 상상의 놀이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금의환향한 운동선수는 필수적 으로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상투적인 질문을 받는다. 금메달 을 따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했나요? 기자는 숨은, 불굴의, 비 상식적인, 눈물겨운, 악전고투의, 인간적인, 처절한, 가십성, 특 종의 답변을 기대한다. 이럴 때 경지에 오른 선수는 능청스럽 게 대답한다. 그래요. 저는 다만 훈련과 경기를 즐겼을 뿐이에 요. 기자의 기대와 예측을 배반한 매우 이상적이고 모범이 되 는 답변이다. 물론 저간의 사정은 다르고,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한다. 어찌 보면 즐길 줄 아는 것 자체가 진짜 실력이다. 즐기는 법을 연마하는 것이 기술과 체력을 수련하는 것보다 더.. 더보기
제1시집 [숨은 벽] 임경순 /시해설 ‘사이’에 숨은 참 자아의 탐색 김석환(명지대 문창과 교수) 임경순 시인이 첫 시집을 내놓는다니 먼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시편들을 살펴 읽는 동안 비교적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이 남달리 치열하고 꾸준하게 시심을 갈고 닦아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숙한 삶의 연륜을 바탕으로 하여 특유의 감각과 예지로 포착한 진실의 빛을 보며 신선한 감동을 감출 수 없었다. 매 순간 다가오는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늘 자유롭고 무구한 자세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주체적인 삶의 길을 기획하려는 자세를 독자적 어법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한 임 시인의 시를 대하면서 니체가 일찍이 20세기에 도래할 대중사회의 특징을 예견한 말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우연도 무리도 아니었다. 니체는 20세기 대중들은 모두 같은 판단과 행동..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