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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놀기

시인 문덕수 명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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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에 대하여/문덕수

내 품안에 한 알의 씨로 묻혀
너를 닮은 과일로 익고 싶다
내 몸살의 칼날은 꽃잎이 되고
뾰죽한 내 돌부리는 만월처럼 깎이어
너를 닮아 차라리 타 버리고 싶다
외길로만 뻗는 이 직선을 휘어잡아다오
부러져 모가 나는 이 삼각을 풀어다오
윤곽이 아니라 그대로 가득찬 충실이기에
실은 우주도 너를 닮은 충실이기에
네 품 안에 떨어진 하나의 물방울로 바다처럼 넘치며 출렁이고 싶다



선(線)에 관한 소묘(素描) / 문덕수

선이
한 가닥 달아난다.
실뱀처럼,
또 한 가닥 선이
뒤쫓는다.
어둠 속에서 빗살처럼 쏟아져 나오는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또 하나의
선이
꽃잎을 문다.
뱀처럼,
또 한 가닥의 선이
뒤쫓아 문다.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피어 나오는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또 한 송이
꽃이 찢어진다.
떨어진다.
거미줄처럼 짜인
무변(無邊)의 망사(網紗),
찬란한 꽃 망사 위에
동그란 우주(宇宙)가
달걀처럼
고요히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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