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답게 나답게

제1시집 [숨은 벽] 임경순 /시해설

야생초향기 2022. 11. 6. 00:10
728x90
반응형

사이에 숨은 참 자아의 탐색

김석환(명지대 문창과 교수)

 

임경순 시인이 첫 시집을 내놓는다니 먼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시편들을 살펴 읽는 동안 비교적 늦깎이로 등단한 시인이 남달리 치열하고 꾸준하게 시심을 갈고 닦아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원숙한 삶의 연륜을 바탕으로 하여 특유의 감각과 예지로 포착한 진실의 빛을 보며 신선한 감동을 감출 수 없었다. 매 순간 다가오는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늘 자유롭고 무구한 자세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주체적인 삶의 길을 기획하려는 자세를 독자적 어법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한 임 시인의 시를 대하면서 니체가 일찍이 20세기에 도래할 대중사회의 특징을 예견한 말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우연도 무리도 아니었다.

니체는 20세기 대중들은 모두 같은 판단과 행동을 함으로써 전원 일치가 되어 균질적인 무리를 유지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목표를 위해 한 방향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개인의 차이를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한 덩어리로 살아가는 비주체적인 군중들에게는 만인의 평등이 도덕의 빛나는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니체의 탁월한 예견대로 속도를 더하는 대중들의 대열에서 벗어나 임 시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열어가려는 삶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었다.

 

1부에서는 또는 사이가 상징하는 상징계인 현실의 빈자리또는 내면의 여백에 잠재된 고유한 욕망을 찾으려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 먼저 시집의 표제가 된 다음 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백운대 인수봉 사이

간절함이 숨어 있다

여름 끝 가을 문턱 사이

그리움이 숨어 있다

깊은 계곡 징검돌 사이

망설임이 숨어 있다

갈참나무 졸참나무 사이

긴 포옹이 숨어 있다

칡꽃 달맞이꽃 사이

짧은 입맞춤이 숨어 있다

앙상하기 그지없는 나무뿌리

무엇을 들킨 것인지

심장 속 응어리로 박혀

숨 쉴 때마다 결린다

바람에 살 점 물어뜯기며

까마득히 숨어 있는

저 벽의 침묵

-숨은 벽 전문

 

숨은 벽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있는 능선으로서 두 산봉을 가르고 이어 주는 경계이다. 그런데 그 숨은 벽은 이름이 붙여진 두 산봉 어디에도 속할 수 있고, 역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빈자리이다. 또한 그곳은 다음에 이어지는 시행들과 대구를 이루어 비유적 관계를 맺으면서 지리적 의미를 넘어서 함축적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이름이 불리어짐으로써 이미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로 진입한 두 산봉과 달리 그 사이는 아직 이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그 사이는 니체가 말하는 맹목적인 대중사회로부터 분리 또는 차단된 곳이며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욕망이 발동하는 무의식적 공간의 상징이다. 시에 나타난 시간과 공간 사이에 숨어 있는 간절함, 그리움, 망설임등은 욕망을 구체적으로 이르는 감정어들이다. 이어지는 갈참나무와 졸참나무 사이에 숨은 긴 포옹칡꽃 달맞이꽃 사이에 숨은 짧은 입맞춤은 그러한 시인의 내면을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 그러나 그것을 질서와 규칙이 지배하는 현실로 다 드러낼 수 없는 노릇이라 심장 속 응어리로 박혀있다. 그리고 현실의 억압이 주는 고통을 참느라 살점을 물어뜯고 불어가는 바람 소리나 들으며 벽의 침묵으로 숨어 있을 뿐이다.

한편 시 에서 은 위 시에 나타난 사이와 동의어로서 시인의 내적 갈등을 암시한다. 사과가 서로 틈이 없이 맞닿아 있으면 썩어가고 홀로 두면 시들어 간다니... 시인은 얼마나 이 필요한 것인가를 스스로 물어본다. 틈을 유지한다는 것은 곧 서로 다른 개체가 온전하지 못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차츰 온전한 전체로 완성될 가능성 있다는 걸 인정해 주고 보장해 주는 것이리라. 임 시인의 시는 알고 보면 맹목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시대의 사이또는 에 숨어 있는 참된 자아를 독자적인 언어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하여 억압이 주는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고 나아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기 위한 방식이다.

또한 시당신 낯설다에서 임 시인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다 으로 들어오는 낯선 당신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어둠 한 겹을 덮는다

삶과 죽음의 팽팽한 줄다리기

건조한 손가락 마주 비비는 듯한 목마름

이렇게 지루한 건 질색이야

참나무 껍질로 갈라진 소리 틈으로

다른 소리들이 들어온다

누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철저히 혼자였구나

 

당신 참 낯설다

-당신 낯설다 일부

 

수술대 위에/ 실험쥐가 되어 뉘어진 채 자신의 운명을 거머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내 어둠 한 겹을 덮어 주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 순간 참나무 껍질로 갈라진 소리 틈으로 들어오는 다른 소리를 듣는다.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리는 순간 듣는 그 소리는 모든 사람과 단절이 된 채 철저히 혼자가 되어 듣는 내면의 에서 울려 나오는 욕망의 울림이다. 실존주의 비조인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자기 죽음과 마주하는 순간 현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 실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존재를 책임져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일 것이다. 또는 자신에게 생명을 부여한 절대적 존재인 낯선 당신의 음성일지도 모른다.

한편 시산다는 건에서 임 시인은 흐르는 물을 따라가듯 일상을 살아가다가 빗변에 서 볼 일이다라고 한다. ‘빗변은 수평의 밑변과 수직의 변 사이에 있는 기울어진 변인데 그곳에서 넘치든 모자라든 서로 주고받으며 인정의 모닥불을 피우고 싶어 한다. 그리고 기대보기도 하고 들끓는 애간장불며 간을 맞추고 말없이 밥상을 차려 함께 먹는다. 빗변은 이해타산으로 얽힌 일상을 벗어나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화합의 공간을 상징한다. 임 시인은 그곳에서 새로운 아침 잔해더미를 헤쳐 희망과 생명의 펜을 찾아 시를 쓰면서 강물을 건너가듯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한 시도가 가능한 것은 빗변’, 즉 수직과 수평적 공간의 경계를 택하여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시 손금에서 임 시인은 비탈길을 오를 때마다 잔금 많은 손금을 보며 여고 시절 재미 삼아 손금을 봐 준 친구가 일찍 세상을 뜬 것을 떠올린다. 그 친구의 비극적 운명을 예언하게 한 손금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그려준 운명의 밑그림인 것 같다고 여긴다. 그래서 손바닥에서 서성이는 나를/ 서둘러 끄집어내는데 이는 곧 운명에 순응하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려는 시인의 내면을 반영한다. 한편 시 삶 갈피에서 임 시인은 삶의 과정을 독서에 비유하면서 인생이 고달프다 싶으면 교과서 타악 덮고/ 끝에서 거꾸로 읽어 보는 거라고 한다. 그것은 교과서에 적힌 전통과 규율 또는 보편화된 지식을 벗어나 주체적이고 창조적으로 살고자 하는 시인의 자세를 암시한다.

임 시인이 그렇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다음에서 보면 아마 삶이란 늘 계획이란 함정에 빠져있다가 여가를 즐기기도 전에 휴식 멀미를 앓다가 제도권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렇게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보다 시간과 제도에 이끌려 분주하게 사는 일상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한편 시 한번쯤에서 일상 중에서 억압된 욕망이 팽팽하게 부풀어/ 빠져나갈 틈 없을 때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보려고 한다. 그리하여 오래 쌓인 사념의 먼지를 털고 침묵하며 숨겨 둔 눌어붙은 아우성 몰아내고음악에 맞추어 신명나게 춤을 추어보려고도 한다. 이처럼 은 자신을 억압하는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문이자 새로운 욕망이 일어나는 여백이다.

그런데 을 통과한다는 것은 이전의 자신과 다른 새로운 주체가 되는 길임을 빨래의 과정에 비유하며 보여 주기도 한다.

 

찌든 때 깊은 얼룩 문대고 비비다

이내 뜨거운 불에 삶아진다

거품의 허세들이 잦아들고

꼿꼿한 것 후줄근해질 때까지

숱한 우여곡절

비틀며 쥐어짜 탈탈 턴 후

바지랑대 높이 집게에 걸린다

-거듭나기일부

 

빨래는 구정물에 빠지고 몰매를 맞고 헹구어지고 찌든 때 깊은 얼룩을 버리고 불에 삶아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마침내 바지랑대 높이걸리는 빨래는 타자의 욕망으로 얽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주체로 거듭나려는 욕망을 암시한다.

그러나 시 나비에서는 이웃들과 관계의 그물로 얽혀 있는 현실을 긍정하며 거부의 몸짓 버리고/ 극진한 먹이가 되어 주리라고 한다. 그리고 시 오후를 부탁해에서는 끝없이 요구만 하는 현실에서 불평 없이 게으르기 좋은 곳”, 즉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빈자리로 걸어가 오후의 시간을 누리며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시 보드카에서는 보드카 한잔을 시켜놓고 자신이 걸어온 거리의 사진을 보며 사람의 존재 의미와 사는 이유를 물어보고자 한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소외된 채 버려둔 자아를 찾고 진정한 주체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려는 실존에 대한 고뇌일 것이다.

 

2부에서 임 시인은 주로 가까운 인연인 혈육들을 비롯한 이웃들을 관계를 복원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리고 죽음을 간접 체험하며 자신의 존재의미의 전체 가능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삶을 기획하며 삶의 본래성에 다가가려는 실존의식을 보여 준다. 시에서 등장하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언니 등은 임 시인이 태어나 현실로 진입하면서 가장 먼저 관계를 맺는 이들로 자아를 정립하고 나아가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장해 주는 대상들이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그들은 신변적으로 가장 가까이 만나는 환경 세계 내부의 존재자들로서 시인과 늘 관계를 맺고 존재를 규명해 주는 근원적 존재자들이다. 특히 어머니는 지상에 자신을 존재하게 한 근원이자 최초에 마주하는 거울이다. 그런 어머니를 그린다는 것은 시인이 혼란한 일상 속에서 조각난 자아를 다시 총합하여 고유한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다음 시에서 어머니는 농부의 아내로 함께 농사를 지었으나 농사짓는 일 자체가 모두 시 쓰기였던 시인이라고 한다.

 

밤새 꽃등 켜 놓고

긴 시 늘어놓은 가지에

가위질로 퇴고하는 파 잎

가을 칠판을 지우는 구름이 지나간다

아버지의 까칠한 수염을 단

수수 이삭을 털며

마당에 널어놓은 원고지에

한 자 두 자 쓰고 있다

- 어머니의 시작법일부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질서에 따라 콩과 참깨를 심는 어머니에게 텃밭의 이랑이 곧 시행이요 밭둑이 연이었다. 풋고추와 천기를 살피려 하늘을 더듬는 들깨은유의 이미지즘이 되었다. 가위질로 퇴고하고 수수 이삭을 털며 마당에 널어놓은 원고지에 시를 쓰던 어머니는 임 시인이 지향하는 진정한 시인의 모습일 것이다.

또한 시 남정골에서 할머니와 싸리나무 하러/ 산속을 헤매다돌아오고 상수리나무에 매질을 하자 떨어지는 도토리를 주머니에 주워 담던 고향의 추억을 그린다. 그렇게 자연에 의지하여 살던 때에 어머니가 술밥 찌느라 피워 올린 굴뚝 연기는 하늘에 적는 우리 집 이야기가 되었다. 흥이 난 할머니 노랫가락이 앞마당에 고이자 늙은 암소가 워낭을 울리고 청개구리가 저녁을 알린다. 그렇게 하늘과 땅 그리고 자연 속의 미물들이 모두 하나로 교감하며 살던 고향의 풍경은 다시 돌아가야 할 낙원이다. 그곳에서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할머니와 아버지도 밥상 앞에 함께 앉자 어머니가 항아리에서 뜨는 용수에 고인 꽃술은 그분들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상징일 것이다. 아무튼 모든 존재자가 온몸으로 소통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지우고 살아가는 고향은 임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본래성이 유지되는 세계를 대신할 것이다.

또한 시 엄마 편지에서 임 시인은 엄마가 생전에 일러 준 말씀의 편지를 다시 되새기며 온전한 삶의 도리를 생각한다. 뉘와 돌을 골라내고 쌀을 안쳐 밥을 짓는 일은 여성으로서 식솔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데 기본이요 필수적인 것이다. 일상 중에 딸을 위해 일러 주었을 엄마의 밥 짓는 법은 이웃을 배려하고 참으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 수 있는 삶의 철학과 교훈이 깃들어 있다. 거울 속에는 엄마의 엄마/ 그 엄마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며 자아의 참모습을 되비쳐 준 엄마는 온전한 삶을 지탱하게 하는 토대가 되어 준 것이다. 그리고 임 시인은 시 홀로움에서 마을 어귀를 지키던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가 고층 아파트로 와서 저승으로 떠난 어머니를 그리며 홀로 지내는 모습을 그린다. “육 남매 알맹이 빠져나간 풍선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홀로 남겨진 세월을 들여다보는 쪽진 새벽달은 이승의 어머니 또는 시인을 대신하여 외로운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보여 준다.

한편 유언에서 임 시인은 홀연히 돌아가신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꿈속에서 본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서 마치 어머니 같아 챙겨 둔 다 닳은 주걱을 챙겨서 쥐고 부엌의 수납장에 넣어 두고 가신다. 인고의 눈물과 희생의 손때가 묻어 있는 주걱 두 개”, 두 마디 말씀으로 남긴 유언의 깊은 의미는 무엇일까.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던 어머니와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 속으로 자신을 이끌어 준 아버지는 자기 존재의 기원이 아닌가. 임 시인은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림으로써 어지러운 세파 속에서 자아의 참모습을 찾고 진정한 주체적 삶의 길을 탐색한다.

그리고 임 시인은 이웃들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인간의 실존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기획한다. 문상에서 당신의 삼일장에 가서 문상을 하며 망자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긍정한다. 그리고 망자가 사후의 세계로 가는 그 현장에서 살아 있는 자 모두가 태어나기 전 벗어 둔/ 묵은 신발 찾아죽음의 세계로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유한성을 생각한다. 다음 시에서는 향대에 꽂힌 향이 타는 순간을 보며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중심에 놓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향대에

성냥개비 내리치는 치열로 태워야 한다

늘 그러하듯

어떤 일대기가 타고

얼굴 하나 지워지는 시간이다

문상객은 저마다 일대기를 꽂으며

꺼질 수밖에 없는 모순을 피운다

긴 줄로 이어지는 생멸의 향내는

머뭇거리고 맴돌다 더디게 빠져나간다

죽음의 거처까지 돌아가는 길을 인도하는

저 둥그런 입구에서

마지막 그림자가 타고 있다

-향로전문

 

임 시인은 향이 타오르다 꺼지는 동안을 일대기가 타고 얼굴 하나 지워지는 시간이라고 여긴다. 향이 다 타버리면 생멸의 향내를 풍기며 꺼질 수밖에 없듯이 치열하게 살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생각한다. 특히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인도하며 향내가 빠져나가고 그림자마저 태우고 꺼지는 향의 소멸은 인간의 실존 비극성을 더욱 강하게 암시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태어나서 사는 동안은 늘 미완인 채로 남아 있다가 생을 끝나는 죽음의 순간에 완성된다. 그런데 죽음에 이르는 일상적 존재인 인간이 사는 동안 결코 죽음을 체험할 수 없으니 살아 있으면서 자신의 존재의미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다만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미의 전체 가능성에 가까이 다가가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 시인도 망자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미의 전체 가능성에 미리 다가가 보며 현재의 자신의 존재의미를 이해하고 새로운 삶을 기획하려는 것이다.

그런 임 시인은 시 황혼 식탁에서 "황혼 식탁에 달달한 석양주를 준비"하여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남은 생을 새롭게 기획한다. 밤과 낮, 인생에 비유하면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경계의 시간인 황혼에 죽음을 미리 앞당겨 의식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승을 떠난 친구들과 소통을 위해 변경된 전화번호를 알아서 싱거운 얘기라도 걸어보면서흔히 먹던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싶어 한다. 또한 기억 저편 아랫목으로이웃들을 불러 모아 사람 노릇을 내려 놓고 흉허물 없이 정을 나누고자 한다. 그렇게 존재의 의미가 완성되는 죽음의 순간을 앞질러 의식함으로써 허위로 이어지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여 남은 생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한편 시 그 여자가 사는 법 1에서 노점바닥을 이십 년 동안 지키며 겨울을 지내면서 오히려 두 손 가득 인정의 선물을 들려주는 그녀의 삶을 그린다. 역시 시 그 여자가 사는 법 2에서 여섯 남매를 키워 보내고 홀로 남아 고구마 순, 콩나물, 깻잎 등 사소한 식재료를 팔고 조개를 까는 것이/ 사는 이유가 된 버린 여자에 얽힌 정겨운 사연을 들려준다. 그 여자와는 오래 정분을 나누어온 터라 긴말이 아니더라도 한숨 색깔 구별해 줄 수 있는 /둘만의 울음주머니를 갖고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하룻밤만 같이 자고 싶다는 부탁을 끝내 들어주지 못하고 잊어버리라며 등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임 시인은 이처럼 소외된 채 힘들게 사는 이들에게 애정의 눈길을 보내며 얽힌 사연들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하여 초라한 겉모습 속에 숨은 참된 인간다움이 곧 자신이 지켜야 할 진정한 삶의 자세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 또 하나의 나에서 비바람에 시달리며 받은 상처가 남긴 흉터인 옹이투성이 나무를 보고 자신만이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또한 신기루만 바라보고 억지만 부리던 자기 곁에서 아픔을 견디며 울고 있던 그 나무가 바로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한다. 그런 임 시인은 개인택시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며 도로를 달리는 과정을 음악 연주와 그림 그리기에 비유하여 삶의 과정을 보여 준다. 역으로 보면 시인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듯 또는 음악성과 회화성을 갖는 시를 쓰듯 일상을 살고 싶은 소망을 엿보게 한다.

 

3부에서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 또는 시간으로 떠나는 여행의 체험을 시화하며 무의식적 공간에 소외되어 있던 참된 자아를 찾으려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먼 섬에서 임 시인은 뭍을 떠나 바다 안개 피어나 긴 띠 두른 섬에서 닻을 내린다.

 

닻을 내리니

가마우지가 자맥질하고 있다

바다 안개 피어나 긴 띠 두른 섬에는

습기 머금은 노을빛 나리꽃 고개 숙이고

자그마한 산자락에 자귀 꽃향기 그윽하다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더니

진초록 물빛 위에 허리까지 담그고

수천 년 넘게 서 있는 선대암 형제 바위에서

작은 돌이 된다

풀꽃이다

뭍에서 멀리 귀향 떠난 섬

-백령도일부

 

그곳에 서 보는 노을빛 나리꽃과 그윽한 꽃향기는 타자의 욕망이 얽혀진 현실과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섬을 차이화 하는 변별적 이미지들이다. 임 시인은 섬에 있는 선대암 촛대바위에서 돌이 되고 꽃이 되는데 그 건너 있는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가 뭍을 그리며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어지럽게 나는 잠자리와 강강술래하는해파리를 비롯한 섬에 있는 자연물의 이미지들은 일상의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시인을 대신한다.

또한 시 기차를 타다에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 속 서랍에 잠재된 기억과 아라비아숫자로 정지된 시간이 존재하는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찾아 누리려는 내면을 보여 준다. 기억과 현실에 얽매여 박제된 가슴이 된 채로 지정석에 앉아 가면서 레일 위 흔적을 남기지 못한 기차처럼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며 허망한 심정에 한숨을 쉬고 기침을 한다. 잊고 싶은 얼굴이 간이역 구절초가 되어 떠오르고 사념들이 실타래처럼 엉킨 채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지만 차라리 질긴 외로움을 찾아구멍이 숭숭 뚫린 낙엽처럼 가벼워지기를 바란다. 결국 임 시인이 떠나는 기차 여행은 곧 시계, 아라비아숫자등 시간과 기호가 지배하는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따뜻하게 안아줄 종착역에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찾으려는 탐색이다.

이제 임 시인은 새로 다가올 계절을 찾아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먼저 열정으로 달아오르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 모퉁이를 돌아/ 텅 빈 자리를 찾는다.

 

시월 한 장 마지막 햇빛

감나무 가지 끝 홍시에 매달려

크도 작도 않게 멈칫

 

가을 모퉁이를 돌아

눈에 밟히고 밟힌 자리로

걸어올 것만 같아

퀭하니 서성입니다

-가을이 오면전문

 

그곳은 어느 누구와 이별을 한 후 지날 때마다 눈에 밟히고 밟힌 자리이거나 타자의 욕망이 비워져 나간 시인의 내면을 대신할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고 싶은 누구는 자신의 결핍을 전적으로 채워 줄 미지의 존재이거나 일상 중에 소외되어 있던 참된 자아일 것이다. 누구는 이제 조락과 결실의 계절인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감나무 가지 끝 홍시가 되어 걸어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을 여행은 일상에 매몰되어 사는 동안 버려둔 참된 자아 또는 자신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미지의 대상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러던 중에 시 겨울 여행에서 시집온 지 스무 해 만에 어머니와 둘이서 동해 하조대로 겨울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몸이 끼어 있던 두 바위 사이는 곧 자신을 구속하던 일상적 현실을 대신한다. 겨울에 찾은 그곳엔 바다 향기로 움튼 싹이 있어 말을 건네 본다. 그것은 상징적인 아버지’, 즉 질서와 규칙이 지배하는 현실에 사는 동안 외면해 두었던 참된 자아의 실체일 것이다. 특히 그곳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머물고 있으니 임 시인이 사회로 진입하기 이전의 이자적 관계를 맺고 있던 요람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어머니와 눈을 맞추는 바다는 곧 모든 결핍을 다 채워주던 어머니의 품이나 다름이 없기에 바다 쬐금만 가위로 오려 호주머니에 넣어가고 싶다며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을 보여준다.

한편 임 시인은 시 여름을 낚다에서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상을 떠나 여름을 찾아나서서 바람 그림자 숨겨진 곳에 이르러 거기에 뿌리내린 고목을 만난다. 고목역시 천 년 계곡만큼 깊은 무의식의 한 구석에 소외되어 있던 참된 자아의 형상일 것이다. “메밀꽃 술을 마시며 현실에서 타자의 시선을 맞추느라 자신을 감추고 구속하던 허울을 벗어던지고 월척의 여름”, 즉 진정한 자아의 실체를 만난다. 또한 시 잠꼬대에서 새벽에 잠을 깨어나 원두커피를 마시며 기차를 타고 항구에 다다라 배를 타고 무인도로 환상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모래시계 속에 담겨 있는 아우성은 시간이란 권력이 지배하는 현실에 구속되어 있는 억압된 욕망의 상징일 것이다.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찾아간 무인도에서 세상으로 향한 문 모조리 걸어 잠그고오래 잠에 빠져들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동안 무의식 깊이 숨어 있을 진정한 자신의 욕망, 곧 꿈이 내게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자 한다.

또한 시 끄트머리에서는 일상이 끝나는 끄트머리를 넘어서 노을이 지는 바다로 향하여 갯바위 앞에서 마냥 서성거린다. “채 삼키지 못하여 앙다문 체념은 일상생활 중에 억압되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은 욕망일 것이다. 그런데 파도는 흰 물거품으로 부수며절망할 줄 아는 여유를 갖고 갯골을 텅텅 비워내듯 남은 욕망을 버리면 뻘도 숨구멍이 뚫리는 법이 있듯 마음에 여백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인은 정지된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억압된 욕망이 주는 고통을 치유하며 스스로 자유를 얻는다.

임 시인이 늘 새로운 공간과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일상에 갇힌 채 진정한 주체로 살지 못하는 소외된 자아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늘 세인들이 말하는 대로 세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사는 동안 고유한 자아는 무의식 깊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시인의 여행은 결국 타자들의 억압으로 버려진 채 숨은 자아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다음 시에서 세상 소리 들리지 않는 물다리를 건너서 마주하는 잘 늙은 목어는 자신의 무의식 깊이 잠재되어 있던 자아의 실체일 것이다.

 

잔바람은 풍경만 울리고

햇빛은 우화루 뜰에 멈춰있다

세상 소리 들이지 않는 물 다리 건너니

잘 늙은 목어 한 마리

매질 피해 찾아온 까닭을 묻는다

너 아닌 것 털어 버리고

버려둔 널 찾아 말을 걸어보란다

-화암사일부

 

목어는 세상에서 사는 동안 타자들로부터 받아야 하는 매질 피해그곳에 왔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임 시인을 향해 진정한 자아가 아닌, 너 아닌 것을 벗어나 버려둔 너를 찾은 까닭을 묻는다. 임 시인은 그 물음을 듣고 내면에 고인 채 주인 노릇을 하던 타자의 욕망들을 실개천으로 흘러 보내자 고요가 둥지를 트는 것을 감지한다, ‘고요는 타자의 욕망을 다 비운 내면의 여백또는 빈자리요 진정한 자아를 대신하는데 이러한 과정은 곧 라깡의 말대로라면 환상가로지르기일 것이다.

타자의 지배를 받던 일상을 벗어나 마음의 고요를 만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되찾은 임 시인은 시 수직을 긋다에서 옥상으로 올라간다. “세상 소리 적나라한 꼭대기인 그곳에서 수직으로 날리는 종이비행기환상 가로지르기를 통하여 진정한 주체가 되어 현실로 진입하려는 시인을 대신한다. 또한 땅 따 먹기에서는 마당에 앉아 땅 따 먹기놀이를 하다가 어머니 부르는 소리에 집으로 달려가야 하듯 세상에 몰입되었다가 언젠가 하늘이 부르면 떠나야 하는 인간의 실존적 유한성을 인식한다. 그리고 시 취객에서는 일상적 삶의 현장은 소화되지 못하는 언어를 내어 지르는 취객과 축축한 욕정을 품고 전단지에 갇힌여인들이 붐비는 황량한 거리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말이란 모두 누군가로부터 배운 것이며 자신의 진실을 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임 시인은 그러한 현실 속에서 살지만 늘 자신의 무의식 깊이 소외된 채 숨어 있는 자아의 참모습을 찾아 진정한 주체로서 살고자 하는 것이다.

소외된 자아의 실체는 시 에서 견고한 네모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길들여지는 애완견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현실을 지배하는 권력의 상징인 벽시계는 애완견을 길들이던 손때 묻은 시간을 털어내지만 무관심으로 버려진 가장자리에서 탈출을 시도하며 울부짖는다. 시인은 깨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길들임은/ 분명한 유죄라고 단죄하는데 그러한 자아 인식은 곧 진정한 주체로서 자유를 누리려는 동기가 된다. 또한 시 쉼표 하나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대 위에 누워 잠시 삶의 쉼표 하나 찍으며지나온 삶을 긍정하고 다음 써야 할 이야기를 새롭게 구상하기도 하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곧 자유일 것이다. 또한 시인이 일상을 벗어나 찾으려는 자아의 참모습은 시 들꽃에서 꽃으로 피어났다가 남겨지는 씨앗 한 알로 드러나는데 초월적인 존재인 그로부터 이름 지음을 받고 싶은 것이다.

 

임 시인은 만인 평등라는 목표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군중으로부터 이탈하여 그 사이또는 에서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자아를 성찰하며 주체적인 삶을 기획한다. 임 시인의 시가 독특한 어법을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고유한 삶의 자세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일상의 여백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의 존재자들과 관계를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실존적 노력을 보여 준다. 특히 죽음의 현장에서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험하며 존재의미 전체 가능성을 앞질러 가서 의식하고 장차 도래할 나머지 삶을 새롭게 기획한다. 임 시인은 때로 낯선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것은 자신을 억압하던 현실로부터 떠나 내면에 소외되어 있던 참된 자아를 만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노력이다.

지금은 기호가 홍수를 이루며 실재를 떠난 수많은 빈말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어지럽히고 있는 멀티미디어 시대이다. 임 시인은 모두 남이 말하는 대로 말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며 함께 발을 맞춰서 달려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혼란한 현실에서 고요한 빈자리를 지키며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다. 그렇게 진정한 존재의미의 가능성을 찾고자 스스로 열병을 앓으며 쓴 임시인의 시가 많은 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휴식과 반성과 희망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반응형